대학사계

이대 캠퍼스는 예쁘다. 잘 가꾸어진 정원 같은 느낌을 준다. 젊음의 소통과 배움의 자유를 알리는 현수막이 사시사철 정겹게 나부낀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 하나 있다. 한 해 한번 나붙는 고시 합격생 현수막이다. 제자들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으니 뿌듯해 해야 하는데 난 별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저기 적힌 이름들 속에 끼고 싶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한 학생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스스로 택한 길이라곤 하지만 아직 여린 마음이 받아들이기에는 고시의 중압감이 너무 크다. 무엇보다 고시는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시험이다. 한번 빠져들면 자칫 아까운 청춘의 상당 부분을 헛된 지식의 암기에 낭비하고 좌절과 후회로 돌아서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뜻보다는 부모의 권유나 사회 분위기에 떠밀려 위험한 외줄 타기를 하는 학생들이 넘쳐난다. 합격에 따르는 혜택이 아무리 크다 해도 난 이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그 혜택이라는 것이 한 청춘을 통째로 날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다.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전공에 관계없이 수많은 학생들이 고시에 매달린다면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학은 가르침과 성장의 공간이다. 그들이 꿈을 품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좌절로 이어지지 않게 모두들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격려가 필요할 땐 등을 두드려주고, 아니라고 느낄 때는 아니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곤 한다. 첫째,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고시라는 커리어 결정을 내렸는지, 둘째, 기왕에 보기로 한 시험이라면 얼마나 공부전략을 잘 짜고 있는지, 셋째, 결과가 마땅치 않을 때를 대비해 어떤 출구전략을 세우고 있는지가 그것이다. 내가 만난 고시 준비생의 대부분은 이 질문들에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못했다. 나는 이들의 99%는 스스로 불행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국가 간 싸움에도 규모가 있다. 작은 분쟁이 있고 큰 전쟁이 있다. 그 중간에 이런저런 전투가 있을 것이다. 한 쪽이 늘 이길 수는 없다. 그런데 가끔 지더라도 작은 싸움은 내주고 큰 승부를 가져야 진짜 이기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사는 방식이나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무엇을 짚어 더 낫다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후회가 많은 삶보다는 적은 쪽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점이다. 후회는 보통 실패에서 비롯된다. 어차피 항상 이길 수는 없으므로 후회는 오기 마련이다. 때로는 적당한 실패가 더 큰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키기 힘든 실패에서 오는 후회는 여한이 되기 쉽다. 인생의 길목에서 어쩔 수 없이 한두 번 큰 승부를 걸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어린 영혼들이 형편없는 확률의 복권을 사듯 자신의 커리어를 고시에 던지는 모습은 정말 안쓰럽다. 기왕에 고시에 도전하려면 한 발 물러서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모르면 묻고, 자신이 없으면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생은 길고, 이것을 설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어떤 잠재력을 가졌는지도 모르면서 스스로 외길을 택해 운명이라 선언하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게임의 법칙 

‘내 나이 이제 스물셋이다. 똑같은 목표를 향해가는데 두 갈래 길이 있다 하자. 하나는 10년을 꾸준히 걸으면 도달한다. 다른 하나는 3년 만에 도착하거나 아니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미로로 향하거나 둘 중 하나다. 어지간한 확신 없이는 후자를 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길을 가다 2년이 지난 후 딱 한 번 마음을 바꾸어 첫 번째 길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이렇다면 아마 두 번째 길에서 첫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도중에 빠져나오면 그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두 번째 길을 택한 사람들 대부분은 2년이 지난 후에도 가던 길을 계속 가게 되기 쉽다.’   

나는 고시를 생각하는 학생들이 이 예화를 한번 진지하게 새겨봤으면 한다. 살다 보면 그 순간에는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판단이라도 먼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잘못된 결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번의 선택이 내 삶에 큰 여파를 남길 수 있다면 그만큼 시계를 멀리하고 판단해야 한다. 위의 얘기에서 어느 길이 더 낫다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능력과 운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길이 더 위험하다고는 분명히 얘기할 수 있다. 모험을 택하려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분위기에 휩쓸려 시도하는 도전은 무모한 시간 낭비가 될 뿐이다. 

고시는 일종의 고수익, 고위험 게임이다. 그래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 사리분별의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 눈에는 혜택은 과장되고 위험은 과소평가되기 마련이다. 변호사 자격증이 부와 명예를 상징하던 시절도 지난 지 오래다. 그저 법률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전문직일 뿐이다. 실력 없는 변호사가 생계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판사나 검사가 아무리 대중적 시선에서 선망의 대상이라 하더라도 권위가 아닌 권력에 근거해 이득을 얻는다면 자신의 땀과 자연의 이치로 정직한 생계를 유지하는 농부의 삶보다 비천한 것이다. 예전에는 판사나 검사를 하다 변호사 개업을 하면 ‘전관예우’라는 명목 하에 큰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부패 행위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기 어렵다. 사법시험이나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진정 청렴과 권위를 앞세우는 법조인이 되려 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야 한다. 부나 권력을 원한다면 다른 길들도 많다. 굳이 내 적성에 맞지도 않는 법조문을 외우느라 고생할 필요 없다.   

공무원 시험도 마찬가지이다. 정부 권력은 여전히 막강하고 그 구성원들이 누리는 혜택은 예전과 비슷해 보인다. 정부 고위직의 대부분은 고시출신들 몫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리 경제와 사회가 빠르게 발전해 가면서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던 시절은 이미 흘러간 얘기다. 관료의 기득권이 오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법과 규칙을 만드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득권이 나에게 가치 있는 미래를 가져다 줄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 같은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공무원도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암기 위주 공부로 얻은 공무원 자격증이 보장해주는 것은 중간관리직 수준까지이다. 고위직일수록 정책 결정에 필요한 지식과 소양의 기준이 높아지며 이는 관료적 조직사회에서 쉽게 형성되기 힘들다. 앞으로는 아주 우수한 소수만이 조직내의 상향 이동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내부경쟁이 심해진다는 얘기다. 우수한 외부인재가 정부 고위직으로 옮겨가는 빈도 역시 점점 높아질 것이다. 어디에서건 실력 없이는 버티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공무원이 되면 은퇴할 때까지 안정적인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변의 얘기가 틀릴 수 있다. 어차피 계속 공부하면서 나의 인적 자본을 늘려나가야 한다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내 적성에 맞는지도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십 년, 이십 년 후를 바라봐야 한다.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도 공무원이 매력 있는 직장일까, 살아가며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반드시 이 길로만 가능할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같은 목표에 여러 길이 있다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해야 한다. 과거에는 고시를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이제는 다른 경로를 통해 가능해지고 있다. 물론 고시를 통과하면 좀 더 빠르게 원하는 목표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시는 경쟁이 심할 뿐만 아니라 능력이나 노력에 비례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불확실한 게임이다. 설사 시험에 붙어 공무원이 된다 해도 그 길이 나의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최선의 방식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내 커리어의 성패를 걸고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는 승부인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따져봐야 한다. 만일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 그런데도 실패가 계속된다면 그것이 인생이라는 큰 승부 속의 작은 전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과감하게 버리고 나와야 한다. 제갈공명이 어떤 전투에 장수들을 내보내며 어떻게 싸우겠냐고 물었다. 한 장수가 ‘죽을 때까지 열심히 싸우겠다’라고 다짐했다. 공명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싸움은 질 수도 있는데 장수가 저렇게 무책임하게 말하다니. 패하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아 다시 붙어볼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다. 

 

이기는 전략과 버리는 전략 

많은 고시생들이 범하는 오류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공부를 일년이라도 일찍 시작할수록 유리하다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 고시반이나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하는 것이 필수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런 방식이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절대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고, 또 의지를 다지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평균적인 학생에게 이런 생각은 약보다 독이 될 수 있다. 

나는 고시반이나 고시촌에 들어간다는 학생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그곳에서 선배들을 따라하면 확실하게 떨어질 거라고. 통계적으로 볼 때 고시반이나 고시촌에 있는 숱한 학생들은 대부분 떨어질 운명이다. 그런데 이런 곳일수록 이런저런 경험이나 요령이 손과 손을 거치며 굴러다닌다. 공부 초년병의 입장에서는 대부분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대부분 떨어질 운명을 가진 사람들의 방식이라 는데 있다. 그게 진짜 비결이었다면 다들 붙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왕에 제대로 공부하려면 평균적인 수험생들과 차별화되는 전략이 필요하다. 

주요 고시 과목인 경제학을 한 예로 들어보자. 경제학은 기본 논리를 잘 이해하면 어떤 응용 분야라도 따라잡기 어렵지 않다. 예컨대 경쟁이 치열한 행정고시 재경직의 경우 2차 시험 다섯 과목 중 셋을 경제학 주제로 치르는데 기초만 튼튼하면 세 과목을 고득점으로 끝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쯤 되면 고시가 더 이상 불확실한 게임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제대로 익히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다수 고시생들은 경제학을 고시촌 강의나 고시용 교재에 의존하며 배운다. 나처럼 고시 문제를 내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경제학 공부는 암기로 해결되지 않는다.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 외우려 해도 소용 없다. 따라서 경제학은 학교 강의에 충실하며 기본기를 닦는 것이 필수적이다. 학교 강의가 부실하다면 세계적 명성의 좋은 교과서로 혼자 공부할 수도 있다.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한다. 고시를 하든 뭘 하든 다 좋으니 제발 대학 3학년 정도까지는 자신을 좀 풀어놓으라고. 대신 영어건 경제학이건 역사건, 기본 교양과 전공 지식을 제대로 익혀보라고 권한다. 대학 공부는 좀 여유를 가지고 이론 분석도 해보고 현실 사례도 따져봐야 진짜 실력이 길러진다. 경제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분야는 특히 그렇다. 이렇게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춰진 다음 고시를 생각해도 늦지 않다. 자기 실력이 충분히 쌓이면 고시 말고 다른 커리어 선택도 눈에 들어올 수 있다. 부자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고시에 성공할 확률도 커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고시에는 운이 작용하는 측면이 크다. 아무리 내 공부가 충실해도 엉뚱한 문제가 나오면 한 해 농사가 날아간다. 내 나름 좋은 답안을 썼다 해도 채점 기준과의 약간의 오차가 당락을 가를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출구전략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내가 권하는 방법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번 정도만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충분히 공부해 가능하면 한 번에 붙도록 하고, 혹 모르니 한 번 더 시도를 해보는 방식이다. 그래도 성공하지 못하면 깨끗하게 돌아서자는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그 정도의 쉼표는 좋은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 세상에는 나와 잘 맞지 않는 일이 있고, 이런 경우 피해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교훈도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막상 힘들여 공부하다 팍 돌아선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2년을 투자하고도 합격을 못했다면 당연히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이미 공부한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번 더 해보자고 덤빈다. 정말 다행스럽게 세 번째 시도에서 성공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실패한 경우이다. 3년의 세월은 크다. 벗어 던지고 나오기 정말 힘들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미로에 빠지게 된다. 2년보다는 3년, 3년보다는 4년을 공부하는 것이 합격할 확률이 높다는 생각에 멈추질 못한다. 

하지만 대다수 고시생들이 간과하는 것은 바로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전체 커리어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몇 년의 실패가 지속된 다음 이 긴 세월 동안 이 정도 열정으로 다른 것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올 것이다. 다른 경력과 달리 고시용 공부는 자신의 인적,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또 다른 비극이다. 좌절이 다시 좌절을 낳는 이 참담한 미로로 들어서지 않으려면 기한을 정해 놓고 도전해야 한다.    

물론 고시는 기본적인 공부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완전 백지 상태에서 딱 2년만 공부해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말하는 2년은 세상과 절연하는 완전 집중의 기간이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일단 경제학 등 핵심전공 중심으로 충분한 기본실력을 갖추는데 대학 생활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그 다음 고시를 포함 다양한 커리어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단 고시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면 그 때부터 딱 2년 정도 ‘단절과 집중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 이상은 무리다. ‘고시 낭인’이 달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질곡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몰라 헤매는 것이다. 

내 인생이다. 부모의 애정은 이해하지만 그들의 시선으로 권하는 고시는 공부하는 당사자의 잣대로는 매우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지금은 대부분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 아닐 수 있다. 뇌가 말랑말랑하고 관심의 폭이 넓은 이십대에는 가능한 한 자신의 인적 자본 축적에 힘써야 한다. 커리어의 첫발도 그런 기분으로 디뎌야 한다. 한 방에 내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지를 깨닫는다면 부모들도 고시를 말리려 들 것이다.  

나는 학생들의 고시 도전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정부를 공부하는 학자로서 제발 우수한 학생들이 정부에 들어가 좋은 정부를 만들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하지만 고시의 외줄 타기 속성을 무시한 채 섣불리 뛰어들었다 멀쩡한 커리어를 통째로 말아먹는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합격자 현수막에 붙은 저 몇십 개 이름 뒤에서 고통과 좌절을 맛봐야 하는 수없이 많은 그들도 나에겐 똑같은 학생이다. 대학은 그들을 돌볼 의무가 있고, 교수로서 내가 할 일은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때로는 실패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멋있는 패배는 더 큰 승부에 도전할 힘을 주니까. 다시 한번 당부하고 싶다. 싸우려면 이기는 전략을 짜야 하고, 어쩌다 패하더라도 웃으며 다음 승부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1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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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2년이라 했지만, 경우에 따라 시한을 다르게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끝은 있어야 한다. 오래 끌수록 미로에서 못 빠져나온다. 설사 긴 시간 후 합격한다 해도 그리 유망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정한 데드라인을 내가 못 지킬 수 있다. 한 가지 방법은 2차 시험을 치른 다음 그 동안 사용한 교재와 자료를 단순 무식한 성격의 친구에게 맡긴다. 합격하면 돌려주고, 떨어지면 그 순간 그대로 불태워 버리라고 부탁한다. Good bye, my lousy old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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